[지리산씨 이야기]2017.01.12 새해 우리는 왜 구례읍성에 섰는가.

관리자
2022-04-20
조회수 617


12년전 대구 근대골목에서 청소년들과 대구읍성과 근대사 아카이브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전문가가 아닌 지역 청소년들이 그런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과거를 통한 미래사회의 디자인이라는 의미적 과제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어딜가나 재현이나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유행처럼 '길'과 '거리'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관광이나 도시재생, 지역 활성화라는 목적을 탓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정말 지역민들의 삶과 어떤 연관을 가지게 될까.

 

일단 2012년부터 구례 구석구석을 다니며 켜켜이 쌓인 기억과 흔적을 들추고,

2014년부터 구례 청소년들과 가볍게 지역답사와 읍성러닝맨 등 몸풀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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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거리는 삶을 증언하는 나이테 같은 역할도 한다.

일단 많이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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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부터 일제는 전국의 읍성을 도시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대대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80년대 초까지 읍성의 일부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기억 저편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봉성지와 속수구례지에.

읍성 길이는 4881척, 높이는 13척.

여기서 유의할 것. 과거 길이 단위는 나라에서 정하거나 관례에 따라 계속 변한다. 그 기록 당시 척(尺)은 40센티가 넘었다.

결국 둘레가 1900미터에 이른다.

 

1872년 지방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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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체성도를 그리면... 이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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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은 길이 되고, 4대문은 자연스럽게 로터리가 된다.

어떤 민간 연구자가 그린 그림이 있는데 종합적인 조사 없이 지방지도에만 의거해서 그리다 보니 오류 투성이다.

 

뿐만 아니라 읍성과 관련된 체계적인 조사나 정리된 자료도 없고, 장소에 대한 안내도 없다.

구례에 역사상 첫 기록으로 이름이 드러난 인물의 흔적도,

그냥 덩그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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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트랜드에 따른 개발사업으로 없던 게 만들어 지기도 하고,

읍성에서 가장 오래된, 관청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주요지표인 나무도 그냥 보호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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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나마 시작하고 싶었다.

이렇게 썰렁하게 있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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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터에서... 종교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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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덕정 오르는 길.

조선 사직단부터 일제 신사터까지 모두 근처에 있다. 구례를 굽어보며 마음을 잡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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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걷기모임을 구례읍성으로 한 것은 삶의 터에 대한 새로운 다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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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야기는 이야기를 통해 계속 삶으로 이어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길에 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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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파면 최소 600년 이상의 흔적이 지층을 이루고 있을 것이며,

주민들의 삶을 중심으로 근현대성이 공존하는 거리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누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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