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씨 이야기]2017.06.18 오랜 숲속, 피아골의 기억

관리자
2022-04-20
조회수 530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그래도 울창한 계곡길, 고갯길을 걸으면 더위는 피하고, 자연의 생기가 피부로 바로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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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48년부터의 아픈 기억.

남조선노동당 구례군당트와 직전마을 골짜기에 대한 이야기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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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

입구의 마을은 직전마을이다. 국립공원이고, 마을사람들이고 모두 '피' '밭' 이라 피아골이라 한다.

직전마을 사람들은 매우 부지런하며, 척박한 땅에서도 소출을 올리는데 아주 능한 사람들이다.

오래전에도 단위면적당 소출을 늘리기 위한 오랜 경험과 방법을 터득하여 넓은 땅에서 편하게 농사짓는 사람들보다 더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다.

다락논은 기본이요, 밭에서도 수수와 콩 등의 혼작이나 윤작 등의 방법이 대표적인 것이다. 따로 '피'를 재배하는 '가성비' 없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일본사람들이 멋대로 우리말을 한자로 차음하여 붙인 이름이 그냥 마을 유래가 되어버린 것이다.

'피앗', '빗', '밴', '밴샅' 모두 경사가 심한 계곡이나 지형에 붙는 이름들이다. 즉, 가파른 골짜기. 그게 피아골이다.

하긴, 지역관광에 별 영양이 안되는 이야기니까.... 그냥 뭐 넋두리다.

 

먼저 피아골 대피소,

조성 당시에 십수명분의 인골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지금은 등산객들의 쉼터지만 올때마다 무주고혼의 바람결이 그치지 않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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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구례군당트를 찾았다.

지난 2010년 봄, 마지막으로 들렀던 구례군당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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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 토지면 청년회를 주축으로 일종의 '안보'인지 '이념'인지.... 관광을 목적으로 조성했단다.

저거 지고 와서 만든다고 엄청 고생했을텐데.... 쓸모없이 버려지는 모습이 씁쓸했다.

 

오랜만에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걱정 했지만,

조성봉 감독 일행의 인식표 덕분에 쉽게 다시 찾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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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식수장에서 제를 드렸다.

'물'은 생명과 그들의 활동이 가능하게 한 원천이었고, 그 흐름을 이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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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복이 끝나자 마자 비가 온다.

얼른 일행들과 주변 지역 '작전'에 들어갔다.

오랫동안 버려져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곳을 청소하는 일이다.

전에도 누가 치워야 되니, 안타깝다느니, 말만 했다. 와서 폼 잡고 기분만 낸 거 같아 늘 기분이 찜찜했다.

'그래, 그냥 하자. 하나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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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흔쾌히, 고마운 인연들이다.

내려오는 길에는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졌다.

 

'소중한 비네, 여기가 기우제 명당인가?'

'아녀, 속이 시원하다고 우시는게지.'

'고맙다고 씻김굿 해주는 거 아닐까요?'

 

해석은 제각각이지만 비 맞는 즐거움은 모두 하나였다.

돌아오니 직전마을은 비 한방울 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치워 놓았으니 다른 이들 마음에도 짐이 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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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일부 마네킹과 천막이 남아있다.

오가는 걸음들이 함께 하길.

 

 

우리 걸음의 마지막은 이렇게 장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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