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천마을.
무자년(1948년) 빨치산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불타고, 다음해 다시 하나, 둘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거먹내 실개천이 마당에 실핏줄처럼 삶을 이어주었다.
마당에 어머니 목욕탕,
빨래도, 설거지도, 심지어 식수로도 쓰였다.
걸음도 힘들지만
아직도 성성한 미싱기와 의자.
자립성의 단면이다.
마당의 풍경 하나하나
삶의 편린이 그대로 담겨 있다.
때로는 궁상스럽다는 자식들의 타박에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자화상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
남은 전과 노각냉국, 그리고 수제비.
뱃속을 채우는 건
당신의 소중한 정성.
그래서 목이 메인다.
현천마을.
무자년(1948년) 빨치산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불타고, 다음해 다시 하나, 둘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거먹내 실개천이 마당에 실핏줄처럼 삶을 이어주었다.
마당에 어머니 목욕탕,
빨래도, 설거지도, 심지어 식수로도 쓰였다.
걸음도 힘들지만
아직도 성성한 미싱기와 의자.
자립성의 단면이다.
마당의 풍경 하나하나
삶의 편린이 그대로 담겨 있다.
때로는 궁상스럽다는 자식들의 타박에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자화상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
남은 전과 노각냉국, 그리고 수제비.
뱃속을 채우는 건
당신의 소중한 정성.
그래서 목이 메인다.